2023 별도의 기획전 하반기 <비물질: 퍼포먼스 Performance>
글_김세희
비물질 시대의 예술, '퍼포먼스'에 대한 단상
퍼포먼스 예술(performance art)은 신체를 매개로 한,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는 형식으로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용어 자체는 1960년대 활발하게 시도되었던 실험적인 예술 형식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20세기 초부터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모임과 퍼포먼스 선언, 형식의 파괴를 동반한 퍼포먼스가 있었고, 다다이스트들의 비이성적이고 도발적인 퍼포먼스 또한 그 선례로 볼 수 있다. '바디아트(Body Art)'로 일컬어지는 1960~70년대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는 인종, 섹슈얼리티, 국적 등 정체성 이슈들과 결합하여 실재로서의 몸을 인식하는 행위들로 나타났다. 퍼포먼스는 이렇듯 다양한 갈래로 이어져 왔지만,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는 퍼포먼스를 통해 '시간'의 개념과 언어화되지 않는 감각적 경험을 공유하는 장르로서 비물질적인 요소를 도입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다.
2023년 옥상팩토리의 <별도의 기획전> 하반기 주제는 '비물질 시대의 예술'이다. 역사적으로 '물질'로서 존재한 예술 작품은 변하지 않는 영속성과 독창적인 표현으로 인해 아우라를 부여받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변화는 일어나지만, 작품은 온전하고 유일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믿음 안에서 그 지위를 획득했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의 보존과 소장은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전시 기간 동안 물질은 계속 그 곳에 있는 것, 변화하지 않고 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반면 비물질로서 퍼포먼스는 이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시간 안에서만 작품으로서 기능한다. 또한 퍼포먼스의 가변성은 작품을 수행하는 주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게도 적용된다. 물질화되지 않는 특정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퍼포먼스는 개별 관람 주체들에게 다른 경험으로 기억되는데, 하나의 퍼포먼스는 동시에 그것을 관람한 사람의 수만큼 파편화된 기억으로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동일한 퍼포먼스가 다른 날 상영된다고 하더라도,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조건이 개입하게 되겠지만 하나의 퍼포 먼스가 현장에서 진행되는 순간에도 관람자들 각각의 감상 조건과 위치에 따라 신체의 무빙과 사운드 등 관람의 대상이 변화한다.
퍼포먼스의 숙명,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
신체를 활용한 동적인 움직임을 공간적인 논의로 전환하고,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바우하우스Bauhaus의 '총체 예술(total art)'을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 다. 20세기의 실험적인 예술계 분위기에서 장르 간 상호교류를 통해 종합적인 예술적 통합을 시도했던 바우하우스 무용계의 움직임은 현재 컨템포러리 댄스까지 이르는 영향력을 가진다. 바우하우스의 무용교수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는 예술의 형식을 디오니소스적 행위와 아폴론적 형식으로 설명하며, 역동적이고 충동적인 퍼포먼스의 특징을 디오니소스적이라 일컬은 바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는 사건이 발생하는 그 시점 안에서 정교하게 언어화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어떠한 인상과 분위기, 감각을 남기는 연쇄행위라는 점이 다. 사회적 공유 체계인 언어는 퍼포먼스를 위한 지시문에서는 효용성을 갖더라도,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 작동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언어로 옮길 수 없는, 또는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 정제할 수 없는 행위와 순간들이 이어진다.
퍼포먼스의 가장 큰 특징인 '라이브니스 (liveness)'는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는 ‘휘발성’과 상연되는 순간에만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현재성'을 가진다. 이러한 속성은 기록, 보존, 아카이빙의 영속성과는 배치되는 특성이다. 역사적으로 퍼포먼스 아트가 전개됨에 따라 비물질을 감각화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특히 영상매체를 통해, 시청각적으로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편집하여 '작품'으로 유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온 것이다. 퍼포먼스 연구자 필립 오스랜더(Philip Auslander)는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수행성」(2006)에서 퍼포먼스를 기록하게 되면서 그 방향이 '도큐멘터리적인 것'과 '연극적인 것' 두 가지 갈래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 때 두 갈래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은, 퍼포먼스가 수행되는 순간 퍼포머의 존재와 사건에서 의미가 발생하는 것과, 기록으로서 '도큐멘테이션' 된 형식의 프레임 안에서 작업의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도큐멘테이션'을 다른 말로 '비물질을 물질화하려는 시도'라 표현해보자. 이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순간으로부터 파생된, 그러나 그로부터 독립된 매체의 특정성을 가진다. 이러한 경향은 '라이브니스'의 도큐멘테이션과 ‘비디오 아트'의 영상미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어느 것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우선되지 않으며, 단지 작업의 과정 속에 시간 순으로 전개될 뿐이다. '퍼포먼스'로 이루어지는 수행의 과정과 포스트-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상, 그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독일의 퍼포먼스팀 아메바 콜렉티브(Amöeba collective)의 작업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메바 콜렉티브의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
독일 카셀에서 결성된 퍼포먼스팀 아메바 콜렉티브는 2019년부터 김영균(Vishnoir Kim) 디렉터를 주축으로 'Bunker Power (벙커파워)'로 활동하였고, 2023년 현재의 팀 멤버를 구성하며 아메바 콜렉티브로 팀명을 바꾸었다. Vishnoir Kim, Cat Woywod, Natalie Bauer, Franziska Ullrich, Herr von Rehtanz, YiDahn 6인으로 구성된 아메바 콜렉티브는 퍼포먼스를 계획·구현 하고, 영상을 만들기 위한 후반 작업에 모든 팀원들이 함께 협업한다. 김영균 디렉터의 드로잉에서 등장하는 이미지와 지시문을 각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각자 느끼는 바에 따라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이때 퍼포먼스를 위한 사운드 디자인, 의상 디자인 및 제작, 안무 등을 위한 적극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열린 형태로 작업을 만들어 나간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상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야외 퍼포먼스, 전시 공간에 설치된 새로운 구조물로 재현되는 퍼포먼스, 무대설치의 잔여물과 아카이빙 영상 전시라는 3가지 단계로 선보여진다. 먼저 문정역 부근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야외 퍼포먼스는 여러 명의 퍼포머가 천을 뒤집어 쓰고 덩어리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거나, 얼굴 위에 거울을 쓰고 나를 바라보는 이를 되려 비추는 형태로 진행된다. 반면, 옥상팩토리 전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실내 퍼포먼스는 7m의 기다란 무대장치와 그 안에 15cm 깊이의 물이 채워진다. 퍼포머들은 사전에 준비된 무대에 천을 덮어쓰고 들어가 몸을 숙이고, 물이 천천히 그 천으로 흡수되는 것을 느낀다. 물 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방수포가 씌워져 있는 구조물을 활용해 소리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높고 커다란 신발을 신고 다소 이상하게 걷거나, 마주보지만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황 등 아메바 콜렉티브의 퍼포먼스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딘가 기이하고 낯선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사물의 기능을 비틀어 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전복하는 이러한 퍼포먼스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전제를 뒤흔든다. 이들의 퍼포먼스에서 사용되는 사물들은 사물의 본래 기능대로 제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목재로 만들어진 하나의 사물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신발'이라고 이름붙인 것과 형태적으로 유사하나 더 이상 '걷기'를 원활하게 유도하거나, 바닥면을 안정적으로 딛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신발이 본래 기능하던 방식을 불편하게 뒤틀어 그 도구로 하여금 퍼포머의 행동을 주장하게 한다. 이 때, 인간인 퍼포머는 스스로 '걷는 주체이지만, 동시에 어떠한 방식으로 '걸어지는' 대상으로서 사물존재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실연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은 이후 편집 기술을 통해 자체적인 영상미를 갖게 된다. 영상 속 시선과 재생 속도의 변화, 사운드와 그 밖의 효과들로 인해 편집된 영상은 퍼포먼스를 비현실적으로 가공하며, 연극적 상황을 극대화한다. 여기에는 여러 장치들이 개입하는데, 사운드는 움직임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수적인 요인이 아닌, 관람자에게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어떠한 사건의 시발점을 알리는 극적 전환의 역할을 한다. 실제 퍼포먼스에서는 한 명의 관람객이 볼 수 없는 여러 장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전환 또한 그러한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때 퍼포먼스의 도큐멘테이션은 연극적인 비디오 아트로의 장르적 전환이 발생한다.
물질로의 회귀, 차원의 이동으로 남겨진 것
퍼포먼스는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 안에서 어느 정도 흐름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진행되는 과정에서 누구도 다음을 확신할 수 없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기에, 퍼포먼스는 우연의 발생을 긍정하는 장르기도 하다. 특히 아메바 콜렉티브의 야외 퍼포먼스는 온도와 날씨, 주변에 모이는 관람객까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된다. 그리고 디렉터와 퍼포머의 판단에 따라 즉흥적인 움직임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퍼포먼스의 불확정성은 외부의 요인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연극배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연기하는 이유는 관람객이 어디를 바라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의 처음에서도 언급했듯이, 퍼포먼스를 보는 관람객의 시선은 분산되어 동일한 사건의 다른 단편들을 기억한다. 개별화된 시선으로 입력된 기억은 상호간 교환되지도, 보존되지도 않는다.
한편, 비디오 아트로 전환된 작품을 통해 분산되 었던 시선(perspective)은 하나로 압축된다. 카 메라의 눈으로 보게 되는 단일한 시점이 적용되 고, 모두가 하나의 시간을 읽는다. 비물질에서 물 질로 차원을 이동하며 열화를 감내한 결과, 기존 공연실황과 라이브니스가 가지는 잠재적 상태 와 가능성은 확정성으로 바뀐다. 현장의 노이즈가 제어된 음향 효과, 느린 재생효과를 통한 시간성 제어, 반복되는 재생시간과 단일한 시선으로 전개되는 비디오 아트에서 퍼포밍이라는 몸짓 언어는 기술적 언어로 치환된다.
퍼포먼스가 일상적 공간, 혹은 전시공간에서 반복적인 이동의 흐름에 개입하는 낯선 에너지로 작용할 때, 퍼포머의 현존과 역동적인 움직임은 디오니소스적 감정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퍼포먼스의 일회적 몸짓은 망령이 되어 관람객의 기억에만 의존하게 된다. 휘발되어버리는 행위-사건의 흔적을 물질화하고자 하는 욕망은 망령의 시간을 반복가능한 시간선으로 전환하고, 통제된 ‘전시’ 공간으로 기꺼이 내어놓는다. 기술을 통한 박제는 흩어진 시간을 가공가능한 시간으로 조각한다. 신체라는 물질과 추상적 감각의 비물질, 이것이 다시 물질로 회귀할 때, 주변에 있는 것(be around)은 한편의 라운드(be a round)가 된다.
The performance event "BLACK WATER" under the official title "Immaterial : Performance"